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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폭력에 대한 묘사와 넷플릭스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한겨울, 넷플릭스와 더 친해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네요. 오늘은 지난 99호 뉴스레터에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AlRawabi School for Girls)” 속 요르단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잠깐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이 드라마는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의 상류층 여학교를 배경으로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마리암과 그 친구들, 그리고 가해자인 라얀 패거리 간의 갈등 구도를 그린 작품이에요. 그 과정에서 요르단 사회, 특히 10대 여성들이 겪는 부조리를 효과적으로 다뤘고요.

마리암과 친구들은 가해자 3인방 중 루콰이야에게 가장 먼저 복수를 계획하는데요. 루콰이야는 아래 사진에서 혼자 히잡을 쓴 것에서 알 수 있듯 엄격하고 보수적인 집안 출신이에요. 두 친구들이 몰래 연애하는 모습을 보며 은근한 소외감도 느끼죠.

축제날 사복을 입고 한껏 들뜬 라니아, 라얀, 루콰이야

(출처: Netflix)

마리암 3인방은 페이스북 가짜 계정으로 루콰이야에게 접근해 히잡 벗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해요. 망설이던 루콰이야는 친구들이 남자친구에게 보냈던 셀카를 떠올리며 히잡을 벗고 브라 어깨끈이 살짝 보이는 사진을 찍어 보내지만, 페이스북에 그 사진이 올라가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죠. 

페이스북에 올라간 루콰이야의 사진

(출처: Netflix)

사진이 올라가자마자 문란하다, 난잡하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둥 악플이 빗발치듯 달려요. 루콰이야를 데리러 달려온 엄마도 여자의 품위는 유리처럼 깨지면 복구가 되지 않는다며, 하자품인 너와 누가 결혼을 하겠냐고 몰아세워요. 루콰이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집에 격리돼, 드라마의 결말까지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요르단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과 달리 히잡 착용이 의무가 아니지만, 루콰이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의 특성상 가족, 친지 등 준거집단 내의 압박이 존재해요.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세계의 여성 인플루언서들 역시 히잡을 쓰는 여성과 쓰지 않는 여성으로 나뉘는데요. 처음부터 히잡을 쓰지 않고 활동한 여성들에 비해 히잡을 쓴 채 활동하다가 도중에 벗는 여성은 더 심각한 사이버불링에 시달려요. 히잡을 쓰거나 벗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인데도 말이죠. 

(출처: 인스타그램 @flywithhaifa)

여행 브이로거인 하이파 베세이소(Haifa Beseisso)가 바로 그 경우인데요. 지난 2020년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히잡을 벗은 위 사진을 올렸을 때 변함없이 지지한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돈과 명성을 위해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죠. 특히 롤모델에게 하루 아침에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성들의 악플이 많았는데요. 하이파는 이후 인터뷰를 통해 히잡 벗기를 강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며 다만 모든 여성이 선택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드라마에서도 루콰이야의 사진에 대해 같은 여성인 엄마나 선생님의 비난이 거셌던 것을 생각하면, 보수적인 아랍 사회에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의 변화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에요.

한편 드라마 속 가해자 3인방 중 히잡을 쓰지 않는 다른 두 친구들도 가정에서 평등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에요. 몰래 연애를 즐길 때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아빠나 오빠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죠. 친구 라니아는 아빠에게 맞아 멍이 든 얼굴로 학교에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요르단에서 가정폭력이 심각하다는 걸 지적하는 장면이에요. 

요르단 당국에 따르면 2020년 가정폭력 사건은 54,743건으로 급증했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아내, 자매, 딸, 어머니 등 여성이에요. 다른 많은 국가에서처럼 팬데믹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그림자 전염병(Shadow Pandemic)”이죠.

팬데믹 후 본인 혹은 지인 여성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로, 요르단은 49%

(출처: UN Women)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다 피해자 개인이 아닌 가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특히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은 최소 120만, 팔레스타인 난민은 200만, 이라크 난민은 5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요. 이들은 가정폭력에 훨씬 취약한 상황이지만 지원의 유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Gausman et al., 2020). 더 큰 문제는 이런 피해 여성들이 제대로 된 보호나 자립 지원을 받기는커녕 일종의 재활원인 “교정센터”에서 보호 구금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에요(Equal Rights Trust, 2017).

이처럼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는 주인공에게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인 학생들도 가부장적 사회구조 하에서는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려내는데요. 결말에서 왕따 주동자였던 라얀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다는 오해를 받고 친오빠에게 권총으로 명예살인을 당하면서 이런 메시지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명예살인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악습이에요(Alsabti, 2017; Kulczycki & Windle, 2011). 요르단이 지난 해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118위, 세계 성 격차(Global Gender Gap) 지수 131위라는 성적표를 받게 된 이유에는 이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해요. 요르단 여성 연대 협회(Tadamun)의 보고서에 따르면 명예살인으로 2019년 21명, 2020년 20명, 2021년에는 첫 10개월 동안 14명의 여성이 사망했어요.

지난 2020년 7월 중순에는 SNS를 통해 명예살인 영상이 퍼져 요르단 전역이 충격에 빠지고,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목격자에 따르면 아버지가 거리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벽돌로 딸의 머리를 내려치고, 경찰이 체포하러 오길 기다리며 아내가 준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고 해요. 살해당한 아흘람(Ahlam)은 이혼여성으로, 가정폭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시설에 구금되었다가 이후 가족에게 돌아가 참변을 당했어요.

아흘람의 사망을 계기로 촉발된 “피는 차가 되지 않는다(Blood Does Not Become Tea)” 캠페인

(출처: 트위터 @Marah_yousef)

가해자가 이렇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건 현행법이 여전히 명예살인에 관대하기 때문이에요. 2017년 한 차례 법 개정을 거친 지금은 최고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던 1990년대에 비해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피해 여성이 간통했거나, 가해자가 극도의 분노 상태에 있었거나, 다른 가족이 법적 조치를 포기하면 가해자가 감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해요. 인권 NGO인 Euro-Med Human Rights Monitor의 법률 고문은 “요르단 헌법은 인종, 언어,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은 다루지 않는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진단했어요. 

총 두 편에 걸쳐 들려드린 드라마 “알라와비 여고” 이야기, 어떠셨나요? 주로 상류층의 모습만을 다뤄 요르단 서민들의 생활상을 대변하기 어려웠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동안 요르단 미디어가 조명하지 않았던 학교폭력과 족벌주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명예살인 등을 정면으로 다뤘는데요. 이 때문에 요르단의 일부 국회의원들과 종교계에서는 드라마 속 학생들의 복장이나 연애 장면 등이 지나치게 “서구적”이고 전통적 가치에 위배된다며 공격했고, 암만에서 긴급 상영금지 처분이 결정되기도 했어요.

감독인 티마 쇼말리는 이 같은 반발에 대해 이런 문제들이 요르단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동안 터부시됐던 문제에 대해 대화의 시발점을 만들어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어요. 요르단 여성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하며 이 드라마야말로 진짜 자기 이야기이자 현실이라고 지지를 표했고요.

요르단 사회가 여성에 대한 억압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많지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더 많은 콘텐츠가 그 벽을 넘기 위한 디딤돌이 되길 기원합니다.

세 줄 요약

#1

히잡의 착용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

요르단을 비롯한 이슬람권에서는 히잡을 벗는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사이버불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2

요르단의 가정폭력은 팬데믹과 난민 위기로 심화되고 있지만,

피해 여성들은 제대로 된 보호나 자립 지원을 받지 못하고

교정시설에 보호 구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3

요르단은 명예살인 문제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명예살인 가해자에게 관대한

현행법의 개정이 시급해요.

※이 글은 익명의 현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NGO는 아니지만 국제개발협력합니다> 시리즈의 인터뷰를 진행해주신 플래시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 안녕하세요, 플래시님 🔦 김치앤칩스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김치앤칩스 구독자 여러분 🙇 저는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플래시 손민희라고 합니다. 이번 2022년 한 해동안 <NGO는 아니지만 국제개발협력합니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운영해온 인터뷰어이기도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현재 플래시 님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