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의 무기화 : 전쟁의 전술에서 인간안보, 거버넌스로

by 짠망

식량안보란 “모든 사람이 활동적이고 건강한 삶을 위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상태”(UN)를 뜻하며, 가용성, 접근성, 이용, 안정성 네 가지 축으로 측정되고 있어요. 지난 기사 보러가기

2025년 현재, 전쟁과 분쟁은 이 네 축을 동시에 흔들며 식량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어요. 전 세계 식량 불안정 인구의 80% 이상이 분쟁 지역에 살고 있고, 이는 더 이상 경제, 농업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할 인간 안보의 과제가 되었어요.

역사와 규범의 전환

인류 역사 속에서 식량은 전장에서 늘 '무기'였어요. 포위, 봉쇄, 경작지 파괴로 적을 굶기려는 전술은 고대부터 반복됐죠.

그러나 1970년대 세계식량위기와 1974년 세계식량회의를 계기로, 논의는 ‘전시 기아’에서 ‘구조적 식량불안정’으로 전환했어요. 1996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로마선언은 현대적 식량안보 정의의 토대를 놓았고, 국제인도법은 굶주림의 무기화를 전쟁범죄로 명문화했어요. 제네바협약, 1977년 제1추가의정서 제 54조,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 2018년 유엔 안보리 결의 2417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요.

(출처 : Reuters.

“Weaponization of food in Gaza constitutes a war crime, UN rights office says)

현재의 무기화 양상과 사례

그러나 이러한 규범의 실효성은 매우 제한적이고, 식량의 무기화는 흔히 찾아볼 수 있어요.

국제 분쟁의 사례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식량 통로 차단으로 인해 인구 3명 중 1명이 며칠씩 식사를 못하고 있을만큼 심각한 식량 위기에 놓여있어요. 세계식량계획(WFP)는 이를 ‘인위적으로 초래된 대규모 기아’로 규정했어요.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항만 봉쇄, 흑해 곡물회랑 중단, 비료, 곡물 가격 급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었어요. 전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량이 급감하면서 자국 농민과 농업 기반 산업 전반에 타격을 줬어요. 우크라이나의 공급 차질은 방글라데시, 이집트, 레바논, 튀니지 등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식량위기로까지 확대됐어요.

나아가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자원을 무기화하는 사례도 있어요. 최근의 인도-파키스탄 갈등이 그런 사례였죠. 지난 4월 카슈미르 테러 사건 이후, 인도가 인더스 수로 조약 사실상 중단을 선언하며, 인더스 분지 물 의존 지역의 저수량 및 농업 생산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고 있어요.

국내 정치, 특히 독재 또는 부패 정권에서도 식량의 무기화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나이지리아에서는 2014년 선거 과정에서 ‘배속 인프라(Stomach Infrastructure)’라 불리는 식량, 구호물자 제공이 표거래 수단으로 쓰였어요. 북한은 국경 봉쇄, 분배 통제, 국제 제재가 결합해 취약계층의 식량 접근성이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어요.

국제사회의 대응

국제사회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회복력 설계 중심의 대응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특히 2023년 G20 보고서는 글로벌 공급망을 무기화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했어요. 이러한 기조는 식량 안보와 농업 분야 ODA 사업에서 참고되고 있어요.

국제규범 강화: 제네바협약 추가의정서 개정 - 식량, 물 등을 민간생존 필수로 명시해 ‘군사목표’에서 분리하고, 식량의 군사적 이용을 규범적으로 차단
모니터링 고도화: 기존 농업 시장 정보 시스템(AMIS) 등 국제 가격, 수급 모니터링 범위를 곡물, 비료까지 확대, 국가별 생산 정례 모니터링, ICT 기반 기상, 시장정보 제공
안전한 회랑 확보: 농식품 ‘그린 회랑’과 전용 자유무역지대 지정으로 분쟁, 제재 상황에서도 물류 보장
작물, 품종 다양화: 종자망 강화, 내재해성 품종 개발, 보급으로 특정 수출국 의존 완화
공동 비축체계: G20 공동 곡물 저장소와 콜드체인 연계, 잉여 곡물 감축, 원거리 수송 및 지역 가공기술 공유 확산

인도주의적 활용 측면에서도, WFP의 식량안보 지도와 통합 식량안보 단계 분류 플랫폼(IPC) 플랫폼을 활용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기준을 통해 식량 불안정의 심각성과 범위를 국가, 지역, 국제 차원에서 분석하고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어요. 개발협력 사업에서는 디지털 모니터링 강화, 현금, 현물 지원 기준 설정, 배급 표적화 및 투명성 강화 등을 통한 효과적 지원이 필요해요.

식량의 무기화는 삶의 질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아주 직접적인 위협이에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국제 규범, 시장, 거버넌스를 결합하고, 데이터 기반 조기경보를 가동하여 분쟁 속 취약계층의 식탁을 지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에요.

(출처 : Alliance for Food Sovereignty in Africa)

세 줄 요약

#1.

2025년 현재 식량 무기화는

가자, 우크라이나, 인도-파키스탄 갈등 등에서

인간 안보를 직접 위협하고 있어요.

#2.

국제 규범은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낮아,

식량 무기화를 막기 위한 안전한 회랑 확보,

공급망 다변화, 공동 비축 등 실질적 거버넌스가 필요해요.

#3.

실시간 데이터 기반 조기경보와 표적 지원을 결합해,

분쟁 속에서도 취약계층의 식탁을 지키는 정책이 시급해요.

에디터의 질문💁‍♀️

이번 기획기사는 어떠셨나요? 삶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 요소인 '식량'을 무기화하여, 분쟁 속 취약계층을 위협하고 있는 사태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국제사회에서도 단순한 비판을 넘어, 구체적인 해결책이 시급한 상황인 것 같아요. 식량의 무기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공사모 카톡방에서 함께 나누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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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칩 발행 6주년을 기념하며

by 핑키

난 중학교 때 집안이 크게 기우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 중 시급이 괜찮은 축에 속했던 프린터 공장, 자동차 부품 공장, 핸드폰 액정 공장 등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었다. 그곳에선 그간 본 적 없던 다양한 광경을 보았다. 단순히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나 땀 흘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지겨운 일과를 게임이나 축구얘기, 뒷담화 정도의 대화로 채우며 힘들게 잔업을 하고, 퇴근길마다 술집으로 향하고, 월급날마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흥청망청 사라지는 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사회적 패배감’이 드리워진 무수한 얼굴들. 섬처럼 철저히 고립된 채 버티던 그들의 켜켜히 쌓인 무력감은 1년, 2년이 지나 어느 순간 분노로 그리고 극우적 언어로 변해갔다.

많은 이들은 그것을 “개인 책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본 각자도생은 선택이라기보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지 못하면 ‘패배한 삶’이라는 사회적 구조에 의해 형성된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은 공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 곳곳에 서있는 곳만 다를 뿐 같은 얼굴을 한 고립이 널려있다.

요즘 유행하는 방식의 사회혁신은 흔히 드러난 ‘약자’, ‘취약계층’을 향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다수, 고립되고 고사되는 평범한 삶도 충분히 다뤄지고 있는가.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사실상 취약한 삶이 산적한 현장에는 혁신가도, 운동가도 없다. 나는 공장에서 만났던 ‘평범한 삶’을 사는 고립된 얼굴들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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